바리스타도 쩔쩔 매는 숨은 변수, 습도가 에스프레소 추출에 미치는 영향
안녕하세요, 18년간 매일 아침 그라인더 앞에 서서 에스프레소와 씨름해온 바리스타입니다. 오늘은 많은 바리스타들이 알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숨은 변수', 바로 습도가 에스프레소 추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여러분,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어제 완벽하게 세팅해둔 그라인더로 오늘 첫 샷을 뽑았는데, 맛이 완전히 달라졌다거나, 갑자기 추출 시간이 늘어나거나 줄어든 경험. 혹시 비 오는 날이나 장마철에 더 자주 일어나지 않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습도의 영향을 체감하고 계신 겁니다.

습도, 그 보이지 않는 적(敵)
커피를 처음 시작했던 2007년, 저는 매일 아침 그라인더 세팅에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특히 장마철이 되면 전날 완벽했던 그라인더 세팅으로는 도저히 일관된 맛을 낼 수 없었죠. 당시엔 이 원인이 습도라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습도는 에스프레소 추출에 있어 가장 간과되기 쉬운 변수 중 하나입니다. 온도, 압력, 원두 입자의 크기, 도징량 등은 많은 바리스타들이 신경 쓰는 변수지만, 습도는 종종 잊혀집니다.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변수가 여러분의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망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습도가 10% 변화할 때마다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은 평균 3-5초가량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큰 차이죠? 이는 맛의 균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변화입니다.
습도는 어떻게 에스프레소 추출을 방해하는가?
습도가 에스프레소 추출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단계에서 나타납니다. 제가 18년간 바리스타로 일하며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공유해드리겠습니다.

1. 원두의 수분 흡수와 분쇄 품질 변화
커피 원두는 흡습성이 매우 강합니다. 로스팅 후 원두의 수분 함량은 보통 1-3% 정도인데, 습한 환경에 노출되면 원두는 공기 중의 수분을 빠르게 흡수합니다. 실제로 상대습도 80% 이상의 환경에서는 24시간 만에 원두의 수분 함량이 5%까지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렇게 수분을 흡수한 원두는 분쇄 시 여러 문제를 일으킵니다. 제가 2015년 여름, 특히 습한 날 경험했던 일인데요, 그날은 분쇄된 원두가 마치 젖은 모래처럼 뭉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동일한 그라인더 세팅에도 습기를 흡수한 원두는 더 미세하게 분쇄되는 경향이 있었고, 이로 인해 추출 시간이 길어지고 쓴맛이 강해졌습니다.
2. 도징과 탬핑 과정의 일관성 상실
습도가 높을 때는 도징과 탬핑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합니다. 습기를 머금은 원두는 포터필터에 고르게 담기지 않고 뭉치는 경향이 있어, 일관된 도징이 어렵습니다.
실제로 저는 습한 날씨에는 평소보다 도징 시간을 더 들여 고르게 분배하는 작업을 하고, 레벨링 툴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3. 크레마의 질과 양 변화
습도는 에스프레소의 상징인 크레마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높은 습도에서 추출된 에스프레소는 크레마의 양이 줄어들고 유지 시간도 짧아집니다. 이는 원두에서 이산화탄소가 일부 손실되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여름, 제가 운영하던 카페에서 특별한 실험을 해봤습니다. 동일한 브라질 원두를 사용해 습도가 다른 두 환경(상대습도 40%와 75%)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했을 때,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크레마의 양이 약 30% 감소했고, 질감도 소폭 거칠게 변했습니다.
바리스타의 대응 전략: 습도에 맞서는 법
18년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습도 관리 전략을 공유합니다. 이런 방법들이 여러분의 에스프레소 품질을 한 단계 높여줄 것입니다.
1. 과학적인 원두 보관
원두 보관에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저는 2010년부터 밸브가 달린 용기를 사용해왔지만, 2018년부터는 한발 더 나아가 실리카겔 팩을 함께 넣어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원두 보관 온도와 습도의 관계입니다.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권장사항에 따르면, 이상적인 원두 보관 조건은 온도 20도, 상대습도 50-60% 사이입니다.

2. 습도에 따른 그라인더 세팅 조정
습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라인더 세팅을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상대습도가 10% 증가할 때마다 그라인드를 약간 더 굵게 조정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저는 필수적으로 습도계를 매장에 비치하고, 교육할 때도 습도계는 꼭 매장에 비치하라고 권장 합니다. 습도를 확인 하고 그라인더 세팅을 조정,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나 장마철에는 매 시간 마다 습도를 확인하고 그라인더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3. 작업 환경의 습도 관리
카페 내부의 습도 관리도 중요합니다. 습도계를 확인 하고, 에어컨의 제습 기능을 사용해 실내 습도를 60% 이하로 유지하기 시작했습니다.
4. 습도에 따른 레시피 조정
습도 변화가 심할 때는 에스프레소 레시피 자체를 조정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일반적으로:
조정 항목 | 변경 사항 |
---|---|
도징량 | 약간 줄이기 (예: 18g → 17.5g) |
물 온도 | 약간 낮추기 (예: 93℃ → 92℃) |
추출 시간 | 약간 단축하기 (예: 28초 → 26초) |

습도와 에스프레소의 관계: 흔한 오해들
습도와 관련하여 많은 바리스타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들이 있습니다. 18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오해들을 바로잡아보겠습니다.
오해 1: "높은 습도는 항상 나쁘다"
많은 바리스타들이 높은 습도는 항상 에스프레소 품질에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낮은 습도(30% 이하)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2013년 겨울, 제가 직원으로 일하던 카페의 실내 습도가 25%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원두의 날림도 심하고 그라인더에서 정전기로 인한 스파크가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극도로 건조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약간의 수분을 더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습도, 이제는 친구로 만들어야 할 때
습도는 바리스타에게 까다로운 변수지만, 적절히 관리하면 오히려 품질 향상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18년간의 바리스타 경험을 통해 저는 습도를 에스프레소 추출의 방해 요소라기보다는,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 변수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매일 아침 첫 샷을 뽑기 전에 습도계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고, 환경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한다면 더 일관되고 훌륭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프레소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세심한 관찰과 끊임없는 학습입니다. 많은 변수가 있지만 그 중, 습도라는 변수를 통해 에스프레소의 더 깊은 세계를 탐험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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